천매 2022. 2. 20. 20:26

0. 개괄

연건의 기숙사에 올라온지 이틀만이다. 

 

 

 

1. 기숙사

기숙사의 환경은 생각보다 더 열악하였는데, 조금씩 적응하고 꾸며나가면 괜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방은 매우 더러운 편이었는데 청소를 잘 해놓아서, 살 수 있을 정도까지는 되었다.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천장에 붙일 수 있는 야광스티커와, 안고 잠잘 수 있는 커다란 베개를 구입하였다. 

무한잉크 프린터를 구입하였고, 당분간 먹을 간식거리를 장만해놓았다. 

 

 

 

2. 기숙사 바깥

기숙사 근처 맛집을 탐방할 예정이고, 지금까지 2곳 다녀왔다. 

기숙사 근처 스터디카페를 알아보았고, 나는 3월에는 기숙사 내부 학습공간에서 최대한 버틸 예정이다. 

기숙사에서 나와서 10초 전력질주하면 바로 서울대병원 입구로, 매우 가깝다. 병원 근처 편의시설을 둘러보았다. 

 

조금씩 산책로와 교통선, 마트, 생활용품점 등 주변 지리를 알아가려고 하고 있다. 

 

 

 

3. 마음가짐

집에서 본과 생각을 할 때는 끔찍한 것으로만 가득하였는데...

최근에 학교 건물 내외를 오며가며 학교 간판을 눈으로 직접 보고,

병원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었다. 

곧 바쁜, 혹은 끔찍한 삶이 시작되겠지만 왠지 괜찮을 것 같은,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혹은, 최근에 가족 외의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마음이 어느정도 회복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혹은 ─ 이제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앞두고 내 마음이 일찍부터 무의식의 '반동과정'을 정서로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 갑자기 떠오른 인물 구상 : 사람들로부터 밝고 활기찬 긍정의 아이콘으로 받아들여지는 인물 A는, 사실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어 홀로 있을 때는 우울해진다. 

 

 

 

4. 서울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다. 

동기와 길거리를 걷다가 귀찮아보이는 실험 참가 권유를 받았는데(내용은 커피 시음이었다)

물론 수상하게 생각한지라, 집요하게 쫓아오는 것을 연신 '미안합니다' 하고 그냥 빠져지나갔다. 

 

그런데 나름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다름아닌 동기의 행동이었다. 

아무 정향(orientation)과 흔들림 없이 시선을 정면으로 하고 그저 앞을 빠르게 걸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경험은, 내게 하나의 '기계 장치'를 연상케 했다. 

 

도시에는 이런 것이 많으니 오히려 능숙한 대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 A는 B를 벗겨먹으려고 할 것이다

- B는 A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빠져나갈 것이다 

위와 같이 약속된 사회의 도식을 배제하고 보았을 때, '그 광경 자체'가 얼마나 인간답지 못한 것인지를 생각하며 한참 생각에 잠겼다. 

 

나는 교회나 선거운동의 전단 하나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적어도 감사히 받아들고는 무슨 글이 쓰여있는지 읽어보려고 하는 편이다. (실제로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비록 길거리에서 당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몹시 귀찮은 것이겠지만,

전단을 돌리는 사람들은 그 전단지의 내용을 숭상하거나 소중히 여길 수도 있을 것일텐데,

그것을 무작정 거부하거나 받자 마자 버려버리는 것은 오히려 더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여기는 점은,

길거리에서 이런 무리들과 조우하게 되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피해를 주는 A〉와 〈당하는 B〉로 기호화된 양자대립의 구도로 상황을 받아들이면,

분명히 서로가 하나의 소중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게 되고, 몰인간화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건 아니고... 뭐 아무리 길거리에서 전도하고 귀찮게 하는 영업자들이 귀찮아도,

사람 대 사람의 만남으로 그들과의 부딪힘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것이었다. 

사양하겠다는 인사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여하튼, 나에게는 '서울'하면 바로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오늘 아침에 동기 친구가 내게 보였던 것과 같은 '몰인간화된 인간상'이다. 

 

물론 이곳에도, 칼바람이 살갗을 에는 이 시절에 우뚝이 서서 추운 초봄의 추위를 녹여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