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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달을 줍다

by 천매 2023. 10. 1.

지금으로부터 한두 해나 조금 더 된, 과거의 일이었다.
땅에 떨어진 새끼 마물이 가여워 품 안에 몰래 거두어 온 적이 있었다.
 
"이 바보같은 녀석, 그거 당장 이리 내! 아주 씨를 말려야 한다."
 
나는 내가 속한 <셸터>의 단장에게 면박을 당하고 있었다.
십수명 쯤 되는 우리 대원들이 나에게 처분이 내려지기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자리의 모두가 낯짝에 두른 감정은 제각각이었다.
─한심함, 귀찮음, 분노, 성가심, 짜증스러움,
 
"맞아! 저번에 스톤 바이퍼가 침입해 뒷산의 셸터가 궤멸한 일은 너도 기억하고 있잖아?"
 
어린 나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맨홀> 너머로 마물을 데리고 내려오는 것이 금지되어있다는 것쯤은.
 
지하 셸터는 인류의 절대 성역.
빼앗길 수 없는 영원의 터전이었다. 우리에게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또한 알고 있었다.
─안타까움, 가여움, 서글픔, 아련함...
 
그 어떤 마물도 절대적 해악은 아니란 것을. 어떤 마물에겐 이미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 그치만! 얘는 아직 아무 힘도 없는..."
 
품 안에 숨긴 어린 데빌독이 꿈틀거리며 낑낑거린다.
이곳도 안전하지 못하단 것을 눈치챘는지, 자꾸만 내 품안으로 파고들려 하였다.
 
"<티아>, 이 멍청한 것! 우리들도 살아야 할 것 아냐! 그 녀석이 해를 끼치지 않을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 저번에도 친구를 만들었다며 웬 도움도 안 되는 페어리를 데려오더ㄴ─"
 
"단장, 긴말 필요 없다. 아마도 얘는 교육이 필요할 듯하군."
"...너무 죽이진 마라."
 
─챙, 하는 소리와 함께,
항상 단장 곁을 따라다니는 늑대 수인 <비오>는 장검을 빼들었다. 곧바로 나를 겨눈다.
 
나는 그녀의 서슬 푸른 칼끝을 본 순간 겁에 질린다. 그만 땅에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품 안의 그것을 감싸고 드는 것이었다.
 
비오 부단장은 내가 하는 짓을 흘겨보더니 한동안 아무 말을 않다가, 이를 꽉 악문다.
 
 
 
칼자루를 쥔 그녀의 손이 잘게 떨린다.
어째서였을까, 내가 읽은 비오의 감정은 분노보다는 망설임에 가까웠다.
 
"...한심하군"
자기 혼자만 들릴만한 소리로, 나지막이 읊조린다.
 
하지만 망설임은 곧 확신으로 바뀌어,
비오는 내 옆구리를 노리듯 기세좋게 검을 휘두른다.
 
훼엥─, 하고 곧장 뭉툭한 칼등이 옆으로 날아든다.
지켜보던 모두들 눈을 질끈 감는다.
 
 
 
세상의 칼날이 나를 향할 때마다,
인과의 총구가 나를 겨눌 때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선 내면을 헤아린다.
 
'나는 땅을 덮는 안개.
  하늘을 헤메이는 구름.
    형체 없는 백색의 등불.'
 
▶ 안개화 Lv.10 [Master]
 
─파앗, 하고 육신이 흐릿해진다.
내가 있던 자리엔 내 정신만 남고, 내 육신과 내 몸에 지닌 것들은 안개처럼 흩어져 형체를 잃는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회피하는 방법이었다.
나 홀로 남아버린 세계에서 잠시동안 나를 지우는 방법이었다.
 
아마도 얼굴 모르는 내 부모님 중 한 쪽,
어쩌면 양쪽 모두가 <고스트> 종족인 덕에 얻은 능력이다.
 
그 덕에 나는 별다른 노력 없이 <비둘기>로써 지상에서 물자를 구해 셸터에 바쳐왔다.
 
 * 고스트도 인류(사람)에 속한다. 인류 안에는 수많은 아종이 나뉘어 있다.
 
 
 
─휘잉
비오의 칼날은 안개처럼 투명해진 내 몸 내부를 맥없이 긁고 지나간다. 약간의 전율.
 
'칫', 하고 혀차는 소리.
안개화한 나는 여전히 겁에 질려 새끼 데빌독을 감싸고 있었다.
 
"...비오 언니, 알았어. 나가서 버릴게. 원래 있던 자리에 놓고 올게."
"지금 원래대로 되돌려놓는다고 될 일이야!!"
 
"..."
예상은 했지만, 그녀의 호통은 여간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코바 단장이 그녀를 곁에 두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다. 군기 담당이었다.
대원들의 나이가 대부분 스물 아래, 많아봐야 서른 남짓인 우리 셸터에는, 어린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이 음침한 고스트 새끼. 고아였던 것을 거두어준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하란 말야! 틈만나면 아무거나 주워와 군식구를 늘리려는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지, 비오는 잠시 말을 쉬었다.
 
"...이제는 마물까지 두둔하려 들어?! ...주제를 모르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 규칙을 깨면 어떻게 되는지, 그 도움도 안 되는 몸뚱아리로 기억하게 해줄 테다."
 
▶ 영체검 Lv.1
순간, 그녀의 검에 빛이 돌았다. 푸른 연기와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녀의 검으로부터 살기를 느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일섬의 검격이 내리꽂힌다,
안개화하여 웅크린 내 등 위로.
따르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캬하아아악! 커헉..."
숨을 쉴 수 없다. 격통을 부여잡고 웅크린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이제야 말을 들어줄 모양이군. ...영체검은 어제 처음으로 익힌 기술이다.
티아 너는 매번 혼나기 싫다구 안개가 되어선 도망만 다니니까 말이다."
 
"...그, 그런..."
"그래, 아직은 엎드려 사죄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거지?"
 
비오는 다시 한번 칼을 높이 치켜올린다.
살상력은 없는 칼등의 검격이었지만, 또한 비오도 제딴에 힘조절을 하고 있을 것이지만, 아픈 것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파들거리며 떨고 있을 때, 품 안의 데빌독이 그르렁거렸다. 그것의 몸이 더워졌다.
알 수 없는 마법에 둘러쌓여 있었다. 환한 빛이 내 주위로 퍼져나갔다.
 
어느새 내 앞에는 내 몸보다 큰 마물이 하나 서있었다. 나를 지키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직감했다. <진화>를 한 것이다.
 
 
 
버려진 서고에서 내게 글 읽는 법을 가르친 <유라시>가 언젠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미숙한 혼은 빈 그릇과 같아, 제 스스로 삼라만상을 담으니.
  최초로 얻은 생(生)의 의지는, 제 영혼과 육신에 맺혀 꽃피나니.'
'...어려운 말이네.'
 
'이 세상의 모두는 어릴 때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야. 그게 뭔지 아니?'
'우웅...... 아니, 그게 뭔데?'
 
'은혜갚은 스파로우의 얘기를 들은 적 있지?'
'알아, 알아! 저번에 선생님이 들려줬잖아'
 
'훗. 티아는 똑똑하구나. 마물들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형태로 변하게 돼.'
'헤에, 그렇구나. 그런데 있잖아, 그러면 평생 그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거지?'
 
'그렇지. 그렇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거야.'
'에... 어째서?'
 
'그건 왜냐면 말이지, ...'
 
 
 
...그때 유라시의 답은 어려워서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의 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 순간 자신이 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력으로 짜인 혼은, 자기 자신의 존재 의의를 처음 찾게 되는 순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는다.
 
마물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게 되는 과정을, 우리는 <진화>라고 부른다.
 
 
 
"크윽! 갑자기 웬...!!!"
"비오! 그 녀석 진화했어요! 데빌독 견고방어형-C타입으로 추정됩니다. 근거리 물리공격은 무효할 것으로 사료됩니..."
 
"내 알 바야?! 그래봐야 조금 전까지 새끼였다고! 힘으로 밀어붙일 뿐!"
 
─깡, 까강, 까가강
부단장은 나를 감싸는 데빌독을 향해 사정없이 연속 타격을 갈긴다.
 
피갑이 돌과 같이 단단해진 데빌독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공격을 다 받아내며 낑낑거린다.
자기 새끼를 지키기라도 하듯이, 쓰러진 내 몸을 감싸듯이 덮어 보호한다.
 
─깡, 까앙, 까앙앙, 까강
계속해서 연속 참격의 충격파가 전해져 온다.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 이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셸터 밖으로 쫓겨나 있었다. 나를 감싼 데빌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 아이가 비오 부단장을 물어 일격을 먹였다는 사실과, 비오가 다쳤다는 사실에 분개한 코바 단장이 나를 가차없이 쫓아냈다는 것. 코바는 비오에 관한 일만 되었다 하면 더없이 엄격해진다.
 
또 한가지, 아직까지 기억나는 사실이 있다면, 그 아이의 품은 무척이나 따뜻했다는 것이다.
내게도 만약 엄마가 있었다면, 꼭 그와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하다못해 가족이라도 남아있었으면...'
나는 목에 걸린 펜던트를 어루만진다. 초승달의 형상을 한 유리 장식이었다.
 
 
 
그날 밤 밖으로 쫓겨난 나는 다 무너진 집 지붕 위에 올라 잠을 청한다.
 
온 마물도 잠들 시간.
푸른 달이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원컨대 오늘은 달이 푸르게 밝기를."
 
나는 아무도 들리지 않을 소리로 중얼거리곤, 혼자 피식─ 하고 웃는다.
원래 그 말은 <오늘은 달이 푸르지 않기를> 으로, 사람들끼리 으레 주고받는 인삿말이자 기도문이었다.
 
 
 
"바보다, 바보. 달은 원래 푸르잖아"
 
건물 사이로 킥킥거리며 튀어나온 것은 페어리 몇 마리였다. 이 근방에 사는 녀석들로, 나를 알고 있었다.
페어리는 혹 요정이라고도 한다. 한쌍 날개가 달리고 체형은 사람의 반절로 작다. 외형은 아이와 같다.
 
"또 쫓겨났다! 또 쫓겨났다!"
"티아, 그냥 우리랑 같이 살아! 우리랑!"
 
보통 지능이 낮아 인외(人外)로 친다. 그래도 그 지역의 언어를 용케 네다섯 살 아이 수준으로 구사한다.
눈에 보이는 자들을 못되게 귀찮게 하여, 인간들에게는 날벌레 취급이다.
 
그들의 생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생활양식에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과, 자연발생과 자연소멸 한다는 것. 성별의 구분은 없다.
가장 유명한 전설은, 평생동안 페어리 다섯의 이름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죽는다는 것.
...난 앞으로 하나 남았다.
 
 
 
"조용히 해. 오늘은 여기서 잘거야."
"킥킥. 못 자게 할거야!"
 
─쿡쿡, 쿡쿡, 하고,
 페어리 셋이 달라붙어 내 볼이며 몸통이며 사정없이 찔러댄다.
 
▶ 안개화 Lv.10 [Master]
 
하지만 몸을 안개화하면 걔네들은 더 좋아라 한다.
모닥불에 앞에서 애들이 신나게 연기 흩듯이, 투명해진 내 몸 안을 마구 후벼판다.  
 
"와아, 연기다, 연기!"
"꺄하하하! 신난다 신난다!"
 
"자, 잠깐! 그렇게 하지 마! 몸 안에 닿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단 말야..."
 
어쨌든, 애들은 무엇을 하든 금방 질린다.
장난을 치던 페어리들은 수 분도 안 되어 옆에 누워선 새근새근 곯아 떨어진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든 생각은 이것 하나이다.
 
어쩌면, 나는 잘못 태어났다.
나는 어쩌면, 사람이 아니었어야 했다.
─내가 인류의 일원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선, 나는 불행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현재』──────────────
 
누군가 내 머리맡에 앉아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눌하게 인간의 말을 하는 페어리.
퍽 푸른 빛이 도는 눈동자. 달무리와 같이 맑고 투명한 날개.
 
"...치료, 필요해?"
 
그 모습을 보자마자 떠오른 심상은,
─영락없는 <푸른 달>이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제일 처음 튀어나온 말은, 그것이었다.
"─원컨대..."
 
푸른 달이 밝았다. 아직 저물지 않은 해보다도 훨씬 더, 밝았다.
내 눈 앞에 있는 페어리의 투명한 날개에 산란하여, 더욱이 밝았다.
 
"오늘은 달이 푸르게 밝기를..."
 
 
 
아무 표정이 없던 그 페어리는,
어째서인지 훗─, 하고 웃어보였다.
 
"오늘 달은 이미 밝아 있는걸? 나름 쌩쌩하다구."
 
"그, 그래...?"
"그래서, 치료, 필요해?"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려다, 저번날에 안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무해한 마물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흡혈을 당한 적이 있었다.
 
애초에 치유술은 수년 동안을 배운 자들에게만 부여된다.
워낙에 치유사가 되기 힘들고 그 자체로 드문 능력이기에, 우리 셸터에도 치유술을 보유한 자는 없다.
가끔 돌아다니는 떠돌이 치유사는 치료를 대가로 거금을 요구한다. 모두들 불합리하다 하면서도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팔로 가까스로 주머니를 더듬어, 마쫓이 종이를 찾는다.
그 종이를 인간 외 종족에게 붙이면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을 줄 수 있다.
 
"그거 꺼내지 마. 그거 아파."
 
"...!!!"
 
내 생각이 읽혔다. 주머니에서 호신구를 꺼내려는 나의 의지를 읽었다.
어떤 방식으로 읽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위험한 아이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서둘러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마음에, 속으로 안개화를 준비한다.
 
'...나는 땅을 덮는 안개.
  하늘을 헤메이는 구름.
    형체 없는 백색의─'
 
─딱콩, 하고 꿀밤이 먹여진다. 아프지는 않다.
 
"그거 하지 마. 네 머리로, 피랑, 마나랑, 못 갈 수 있어..."
"..."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그것은 안됐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나쁜 생각은 없어"
"..."
 
"하지만, 이대로면, 곧... 죽어"
"...네가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겠어?"
 
 
 
내 물음에, 그녀는 특이한 방식으로 답했다.
 
"달은 언제나 밝아 있어."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정말로 치유술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달이 살아 있다면, 꼭 그 아이와 같은 모습이리라고.
 


 
(공백제외 4717자,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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