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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 즐기다/문학

눈사람 자살 사건 - 최승호

by 천매 2021. 9. 8.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 위에 누워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 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나도... 딱히 더 살아야 할 이유는 없고 죽어야 할 이유도 없는 사람이다.

다만 그래도 최근은 내 삶에는 매우 만족하고 있는 것 같고 다행스럽게도 죽음을 생각한 일도 전혀 없다. 

뭔가 텅- 비어있는 느낌은 많이 들지만 그것이 대수롭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비어있는 마음은 언제든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지금 환경이 여유로워서 그렇지, 조금만 더 삶이 나를 죄여오면

나는 언제든지 죽으려면 바로 죽을 수 있는 위태로운 심리상태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많이 겪어보았다 

 

生의 의욕을 잃는 것은 다른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단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모든 것을 버리고 몸을 던질 때는 나는 어떤 곳에서 마무리를 하고싶어할까 

 

머리가 꽃밭인 지금은 그런 무기력한 상황을 떠올리려 해도 딱히 떠올려지지 않는 것인데 

그저 조만간 근처 사우나에 가서 온탕에 몸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이 스칠 뿐이다 

 

일단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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