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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 즐기다/문학

RE:제로에서 생각해볼만한 점 : 부모가 자식에게 던지는 설명

by 천매 2021. 8. 19.

리제로 볼 때 생각해볼만한 포인트가 있는데, 특히 애니메이션으로 치면 1기 2쿨 부분이다.

 

그 부분의 이야기에서는 주인공 스바루가 에밀리아를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꾸미는 사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에밀리아를 욕하는 기사에게 맞서거나, 에밀리아가 스바루에게 크루쉬의 영주에 머물러 가만히 요양하라는 약속을 깨고 백경을 치고 페텔기우스 중심의 마녀교도를 치는 사건 등등이 그렇다.)

 


 

스토리 플롯의 특성상, 스바루는 여러 차례의 반복되는 죽음을 경험하며 자신이 하는 어떤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고, 어떤 날에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모두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능력을 이용하여 앞으로 에밀리아에게 찾아오게 될 좋지 않은 사건들을 미리 원천차단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바루가 세계의 사건에 개입하는 과정은 에밀리아가 원하는 바와는 다른 것이라 반감을 살 수 있는데 

 

이때 스바루에게는 '자신이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요구된다. 

 

 

 

하지만 세계는 주인공이 '자신의 사망회귀'를 털어놓지 못하게 고통으로써 강제하도록 구조가 조직되어있다. 

 

그래서 그 세계의 구조 하에서, 스바루가 에밀리아를 설득하기 위해 꺼내는 말은 이런 식이다 

 

"내가 그렇게 해주고 싶기 때문에" 

 

아무 설명도 되지 않는, 제멋대로인 답변이다. 

 

왕도에서 스바루가 율리우스와 싸운 후 처참히 패했을 때, 스바루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에밀리아에게 설명할 때 딱 그런 느낌이었는데, 에밀리아의 반응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나 또한 처음에 이렇게 자기 멋대로인 답을 하는 스바루를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세간에 스바루가 발암 캐릭터라고 인지되는 이유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스바루에게는 어떻게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요구되는데, 자신이 죽음을 대가로 보고 온 가능세계의 미래에 대한 경험을 말할 수가 없으니, 이렇게 감정에 호소하는 설명이 최선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한편 이 설명은 백경이 무너지고 페텔기우스가 죽은 이후의 서사 대단원에서도 되풀이되는데, 에밀리아가 스바루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주느냐'고 물었을 때 스바루는 마찬가지의 답을 한다.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리고 그것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에밀리아가 처음에는 납득이 되지 않았는데, '막연히 결과가 좋게 되어서 그런가...', 하고 처음에는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바뀐 것 같다. 

 

나는, 리제로 1기 2쿨에 해당하는 초반부에서 스바루와 에밀리아의 관계는, 우리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에밀리아가 스바루에게 처음 느꼈던 악감정, 그리고 이후의 고마운 감정을 아주 잘 설명한다고 본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난 이후, 세상을 경험한다. 

 

다만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을 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해서 안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콩밥 속 콩을 먹기 싫다 해도 쉬이 면제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느낌으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싶어하는데, 아이들은 이걸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거나, 운동을 시키거나 학습지를 풀리거나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은 이걸 마냥 달가워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인데, 일단 학업에 잘 적응하여 청년기에 공부로 인해 막히는 길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며, 자신의 취미활동과 다양한 능력계발이 앞으로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을 아는 것이며, 건강한 몸이 있어야 장년기가 되어서도 앓지 않고 살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 오래 살았던 경험이 부모에게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저런 일들을 하기 싫어할 때, 아이가 그것을 꼭 해야 하는 이유를 저렇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부모는 적을 것 같은데,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 대상으로는 설득력이 없는 설명일 것이다. 

 

 

 

이럴 때 부모가 선택하는 전략은 이것이다 : 

 

"내가 그렇게 해주고 싶으니까" 

 

개인적으로 이것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설명이라고 생각하는데, "너에게 피와 살이 될거야"라는 알아듣지 못할 설명보단 훨씬 나은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부모가 아이를 위해 희생할 때, 아이가 부모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야?"라고 묻는 것에 대한 답도 되는데, 이 사실 또한 얽혀 위의 설명에 담긴 진의를 풍부하게 한다. 

 

 

 

아이들은 왜 부모가 자신에게 번거로운 것들을 시키고, 또 필요없다고 생각하는걸 주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거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괜히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이 받았던, 부모가 해주었던 그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아이가 다 성장하여 세상으로 나아갈때쯤이다. 

 

철이 든 아이는 그 부모의 행동에 대한 참뜻을 알아가게 되는데 

 

부모가 해주었던 것들이 나를 성공으로 이끌게 되는 것을 깨달을때 비로소 그렇다.

 

그제서야 어릴 적 아는게 아무것도 없었을 때 자신을 바른 길, 성공하는 길로 이끌어준 부모에게 감사하는 것인데 

 

이와 같이 아이가 부모의 '제멋대로'에 반감을 가졌다가, 후에 그것 덕분에 자신이 가지게 된 것을 보며 감사하는 과정이

 

내가 생각하는 리제로에서의 스바루가 에밀리아를 향한 관계와 서로 같은 구조라고 보는 것이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에밀리아가 스바루로부터 '제멋대로'인 설명을 들으며 평화롭게 이야기를 맺는 것도 그때문인데, 

 

에밀리아는 처음에는 무작정 율리우스에게 나서서 자신을 욕되게 한, 그리고 조용히 성에 머물러 치료를 받기로 했던 약속을 깬 스바루의 행동을 싫어하여 반감을 가지는 것이었지만 

 

스바루가 온전히 에밀리아를 위해 몸바쳐, 그녀에게 다가올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놓은 것을 보고는 

 

그제서야 스바루가 말한 '제멋대로'를 마음으로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며 

 

아마도 일종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심리에는 원초적으로 모종의 유대관계를 그리워하는 기작이 있을 것인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그중 가장 큰 하나일 것이다. 

 

나와 그런 관계를 맺으며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친밀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해보이며 

 

이것이 에밀리아의 스바루에 대한 감정의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 막연히 연인으로서의 연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부모와 같이 기댈 수 있는 종류의 유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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