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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瞰] 내다보다/세상의 이야기

언어표현의 의미에 관한 사회적 합의와 허용 문제 - 보이루

by 천매 2021. 9. 6.

세상 많은 갈등의 근원은 언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완벽한 수단은 아닌 것 같다. 

 

 


 

글을 읽기 전에 필자에 대해 알고 갈 점 : 

1. 보겸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음. 윤지선과의 법정공방에서 잘 이겼으면 함. 

2. 극단적인 쪽의 페미들 극혐함. 혹여 극단적이지 않은 페미일지라도 그런 성향을 자꾸 어필하는 사람들과는 웬만해선 인연 끊음.

 

싫어요가 매우 많은 영상이 알고리즘에 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Q3nugeIWsE 

 

나는 그의 논지의 많은 부분에 동의한다... 표현이 조금씩 엇나가긴 하였지만 충분히 일리있는 주장이다. 

 

나름 생산적인 논의를 제시하는 것 같은데 댓글은 무분별한 비난과 조롱으로 수준이 낮은 점은 안타깝다. 

(그리고 비록 댓글에선 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만 댓글에 고정한 내용을 보면, 매우 중도적이고 안정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요지는 비록 보겸은 보이루라는 말을 혐오의 의도 없이 인사말로 만들었지만

그것이 나중에 여성혐오적인 맥락에서 쓰이기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며

혐오의 의미가 내포되지 않는다면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누군가 오해할 여지가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조심해서 써야하며 무엇보다 서로 혐오를 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한다 

라는 것이다.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보'가 들어간 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표현이 잘못된듯하여 많이 까이는 부분같고 동의하긴 어렵지만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는 된다... 초등학교 중학교 학창시절에 내 이름 가운데 글자로 이런저런 말들을 만들어 놀려대던 애들이 있었는데, 비록 일상적인 단어들의 나열이지만 그것들을 쉼없이 듣고 있는 것은 매우 귀찮았다. 어릴 때는 그런게 일종의 놀이라서 그런거긴 하지만 ㅋㅋ... 그래도 그런 느낌이라면 예민하게 반응하는게 아주 이상해보이진 않겠다...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불쾌한 감정은 이런저런 언어활동에 시달리는 경험 속에 만들어진 것이다. 뭐 보이루를 보X 하이루로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만약 보이루를 그 맥락으로 자주 들어온 사람이라면 그 말을 들으면 불쾌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충분히 여러 반박을 맞으며 논란이 될 수 있는데,

보이루는 애초에 그런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여성혐오적인 맥락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적으며 

무엇보다 소수의 비뚤어진 사용자로 인해 다른 사람들까지 단어의 의미를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점은 몹시 소모적이다. 

 


 

보이루라는 단어는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보겸은 처음에 그것을 만들 때 자신의 구독자들을 향한 인사말이었겠지만 

일부 사람은 그것을 물론 보X 하이루로 쓸 수 있다. 

(그런데 보이루가 그렇게 쓰이는 사례랍시고 들고오는 짤들을 보면 죄다 게임에서 채팅으로 쓰이는 사례던데, 그걸로 치면 세상엔 여험단어같은 것들이 허다하다... 내가 고등학생때 옆 중학교에 교육봉사하러 간 적이 있는데 애가 '갑분싸가 뭔지 알아요?'라고 해서 내가 아는걸 말했더니 걔가 하는 말이 '갑자기 분수 싸버리고~'의 줄임말이란다. 이런 식으로 언어 사용자들이 무지성으로 자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단어들이 있는데 이런것들 하나하나를 여혐이니, 무슨 혐오니 뭐니로 보는 것은 좋지 않아보인다... 근데 분수는 남녀공통으로 쓰는건가 그리고 저기 댓글에 보면 '윤지선'이란 말도 '윤락한 자1지를 선물한다'라는 뜻으로 남혐이란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를 받아들이려면 몹시 피곤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보이루'의 주요 의미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는 전자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특정 맥락에서 보이루가 후자의 혐오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의 언중은 이를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만약 옛날 누군가 '긁다'라는 동사의 의미에 '물건 따위를 구매할 때 카드로 결제하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면

이것은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카드를 긁는다는 의미로 '긁다'가 충분히 널리 쓰이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새로운 의미를 들이는 것으로 인해 단어 자체의 어감이 이상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루의 혐오적인 의미는 그리 널리 쓰이고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새로운 의미를 들이는 것으로 인해 기존 단어의 어감에 비천한 속성이 크게 붙기 때문에 

보겸과 그의 팬들은 절대로 보이루가 그 뜻이기도 한다는 주장을 부정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어떤 곳에서는 쓰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주요한 의미를 뒤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있지 않다) 

 

이렇게 단어의 혐오적인 속성에 대한 의미의 합의가 어려워진다면

이 단어를 사용해도 되느냐, 마느냐가 또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물론 내 생각에 저 케이스는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해도 된다. 

이 단어를 이상하게 가져다쓰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며, 그들이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흔한 의미로 '보이루'를 사용하는 언중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하지만 (혹시 있다면) 저 단어로 인해 기분이 불쾌할 사람이 있다는 점은 그럼에도 생각해볼만하다. 

 

비슷한 사례로 저번 안산 선수가 남긴 옛 글의 '웅앵웅' 표현이 있겠다. 

아무 의미 없이 썼을 수 있겠지만, 분명히 어디에선가는 혐오적인 의미에서 쓰이고 있다. 

그럼 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조심해야하느냐 아니냐는 또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저 단어들의 의미에 대한 합의는 매우 어렵고, 또 저 단어들을 사용해도 되는지의 문제는 더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할 지점이 매우 많다. 

 


 

가상 혹은 현실의 사례를 몇 제시해보고싶다 

 

1. 철수는 길을 가던 중 누군가에게 성경으로 얻어맞은 바 있다. 이후 철수는 성경이라는 단어를 싫어하게 되었고 접할 때마다 일종의 혐오감과 공포감을 느낀다. 
이후 철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는 성경과 관련된 말을 꺼내지 말라고 요청한다. 

철수의 주변 사람들이야 조금씩 조심해주면 되는 일이지, 저걸 널리 어필할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본인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널리 쓰이는 것과 널리 쓰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매우 커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맥락에 따라 얼마나 쓰이는지를 통계적으로 조사하는 것도 하나의 지표를 제시하는 방법론이 될 수는 있겠는데 

이 역시도 완전하지는 못하다. 

 

2. 卍 혹은 卐은 옛날부터 동아시아권에서 절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쓰여왔다. (인도에서는 신성한 문양으로 여겨지기도 한다)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의 스와스티카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저 문양은 안좋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나치에 의해 피해를 입은 국가 사람들이 동아시아의 절 간판에 저 한자를 적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 

이 사례는 논란이 매우 많았다. 이것을 인도의 휴일 표시로 보든, 절 표시로 보든, 나치 문양으로 보든 하는 것으로 아직까지 싸움이 매우 많다. 인도 사람들은 이것이 본래 자기 나라의 신성한 문양이었던 것을 나치가 수용한 것이므로, 사람들은 卍 문양의 유래와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며 만자 금지론자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래는 중요하지 않다. 어딘가에서는 저 문양이 다른 싫은 것을 연상시킬 수도 있고, 심각한 트라우마를 상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용하지 말자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리고 저 문양의 사용을 자제하자고 하는 것도 꽤 이상하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국기에도 있는 태극문양이 사실 어떤 집단에서는 금기로 여겨진다면? 

 

3. 중국어로 치킨은 '炸鸡[zhaji]'이다. 이것은 한국에서는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속된 말로 듣기에 껄끄럽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중국의 炸鸡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기를 요청한다. 

이 사례는 말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일단 굳이 바꿀 이유가 없어보인다. 중국에서도 炸鸡는 치킨이란 뜻으로 널리 쓰이고, 한국에서도 '자지'는 남성기의 속된 말로 널리 쓰인다. (비슷한 느낌으로 한국어에서 식물 이름인 '망개'는 일본어에서는 '보X 털'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속된 말이다.)

얼핏 보면 웃어넘길 말일 수 있지만, 혹시 zhaji가 한국어에서 그저 속된 말일 뿐이 아니라 심각한 혐오와 차별의 표현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4. 시발(始發)은 '시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원은 [씨+팔]에 있는 한국어의 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시발'이라는 단어를 시작의 뜻으로 사용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는가? 

실제로 start의 맥락에서 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자제되고 있는 편이다. 문제집 이름에도 있는데

 

아주 비슷한 사례라면

5. 육십갑자에 따르면 2016년은 '병신(丙申)년'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욕설이기도 불쾌한 욕설이거니와 장애인을 비하하는 소지가 있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이 말을 들음으로써 기분이 몹시 언짢을 수 있는 언중들과 장애인들을 고려해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가? 

실제로 이때 방송사나 신년연설 등에서는 어감이 좋지 않다 보니 사용을 매우 꺼리게 되었다. 

 

이외에도 비하의 의미를 가지는 '에스키모'에 관한 문제

 

문자 그대로로 하면 조선인이라는 뜻밖에 없지만 비하의 의미가 있는 '조센징(朝鮮人[chousenjing])'에 관한 문제

 

원래는 경상 방언의 일부이기도 하고 커뮤니티에서의 친근한 말투이기도 하지만 일베에서 전 노무현 대통령을 놀리는데 쓰던 종결어미 '~노'에 관한 문제

 

그리고 일베에서 게시글 비추를 지칭하는 용어 '민주화'에 관한 문제

 

등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무엇을 허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자제해야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내가 생각하기에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기분이 나쁠 수 있을만한 표현'을 삼가는 것은 배려의 영역인데

욕설 등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좋지 않은 것으로 널리 합의가 된 표현은 삼가는게 맞는 것이며 

다른 의미로 널리 쓰이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게 받아들여질만한 표현은 시행착오로 알아가는 것이다.

서로간의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질 때야 비로소 각자 누가 무슨 표현을 싫어하는지, 또 트라우마가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혹시 상대가 싫어하는 말을 써서 갈등이 생긴다면 대화로써 화해하고 해결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다음부터 그 말을 쓰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에 너무 민감해져있다. 

모르고 저런 말들을 쓰는 사람들을 추궁하고 비난하며 

저런 말들을 비하의 의미 없이 쓰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여겨지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매우 좋지 않은 현상이다. 

 

 

 

위에서 제시하였던 이런저런 사례들을 생각하면 그저 답은 안나오고 머리만 아플 뿐인데 

이와 관련하여 필요한 말은 내가 예전에 한번 해두었다. 

2021.07.27 - [[瞰] 내다보다/세상의 이야기] - 불편은 나의 몫

 

불편은 나의 몫

알고리즘 타고 가다가 봤는데 댓글들 내용이 하나같다 다른 반응들도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래 영상의 아시안 차별 여부에 관한 말들... https://youtu.be/B1QJpdJJYvM 원본 일부 발췌한 영상 https://y

skyplum.tistory.com

있을지 모를 소수자의 불편을 위한 축과, 규제받지 않는 의사표현을 위한 축 사이에서의 불안정평형. 

다만 이 문제에 다른 점이 있다면, '있을지 모를 소수자의 불편'이 아니라,

'이 자리에 서있는 나의 불편'이다. 

 

그것으로 인해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보이루의 건은 어쩌면 조금 더 특수한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데

가령 사람 하나 묻으려고 작정하고

특정 단어에 혐오적인 속성을 부여하여 '저 말이 혐오를 조장한다' 하는 식으로

소수 사람들이 자신이 저 표현으로 인해 불쾌함을 느낀다고, 혹은 저 표현이 혐오 표현이라고 주장하면

(가령 논단에서든 매체에서든)

그것을 힘으로 밀어붙이면 정말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언중이 그걸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이. 

 

그렇게 '보이루'에 강제로 묻혀진 부정적인 말뜻은 보겸과 그 팬들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보겸의 나쁜 이미지를 조성하는 것에 성공하는 꼴이 되었다. 

 

 

 

언어표현이 가진 의미의 자의적인 합의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 합의는 어쩌면 해당 언어표현의 사용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그 여파는 경우에 따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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