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일 1 https://skyplum.tistory.com/entry/%EC%98%9B-%EC%9D%BC?category=487514
시가쪽 친척 중에 그닥 사이가 좋지 못한 쪽이 하나 있었다.
강남쪽에 사는, 나보다 한살 막 어린 남자애가 있는 집이다.
아버지가 필리핀에서 도박 게임을 개발하고 어머니쪽은 학습지 선생으로 일했는데 그쪽도 막 잘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울권에서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그 집안 나름대로 큰 자랑거리였던 것 같다.
특히 나름 인구 수는 있지만 그래도 한참 시골에 속하는 지역에 사는 ─ 나를 그들이 무시하는 일은 많았다.
내가 10살 채 되지 않았을 때 명절 즈음을 맞아, 그 큰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서 내가 보던 이런저런 책을 살펴보고는 우스운 듯이 '너 이런 책으로는 성공 못한다' 라든지, 내게 꿈을 묻고는 이런저런 사람이 되겠다고 하니 '꿈을 크게 가졌구나'라든지, 그런 말들을 많이 듣고 살았다.
당시 내가 큰 감정을 품고 있던 것은 아닐 것이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도 그닥 애한테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기에, 나에게 있어서 그들 가족은 이래저래 불편한 사람이었다.
특히 고등학생때 그런 일들을 특히 많이 겪었던 것 같다.
진로를 결정할 때의 일인데,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 넘어갈 즈음, 주변의 말을 듣고 의대로 진학할지, 아니면 좋아하던 수학을 전공으로 삼을지의 경계선에 섰던 때이다.
그때는 아마도 내가 수학과에 진학하겠다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던 때였던 것 같다.
우리 가족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진로를 그리 하도록 했다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다만 이때 하나의 큰 계기가 있어 진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역시 그 큰엄마 집안과 엮인 일이다.
"수학과? 편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데, 그냥 근처 전남대 수학과 가서 수학 강사나 하면 딱 좋겠네요! 지방 사는 애가 굳이 서울로 올라오려 할 필요도 없고..."
강사 ─ 생각해보지 않은 직업은 아니었다. 나름 좋으리라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왠지모르게 그 말은 나에게 큰 모욕으로 다가왔다.
'이게 내가 원하던 길인가?'
나는 과연 이 길에 진심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냥 어쩌다 보니까 수학을 잘 했기 때문에, 뭣도 모르고 계속 나아가려고 하는거 아닐까?'
그 집안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무엇보다도 수학을 전공하리라 하겠다면 주변 시선이 마냥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아. 수학을 좋아하나보구나. (...) 다른 요일에 있는 반에 ○○고등학교 다니는 너랑 비슷한 또래 애가 있는데, 얘는 진짜 천재야! 의대를 지망하는 애거든. 항상 전교 1등이래."
사람들이 "나는 수학과에 갈거예요"와 "나는 의대에 갈거예요"에 보내는 시선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다시 생각했다.
내가 무엇이 되는지에 따라,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삶이 조명되는 양상도 크게 달라지리라는 점을 생각했다.
"의대 쓴다고? 공부 되게 잘했나보구나."
또한 내가 꿈꾼 진로가 어쩌면 남들이 나를 비웃는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용납할 수 없었다.
"뭐 먹고 살게? 입에 거미줄만 안치면 다행이라는데."
무엇보다도 가장 큰 것은, 지금까지 나를 무시해왔던 사람들에게, 또한 나에게 허튼 시기 질투를 보내던, 혹은 그냥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복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점이다.
"너가 선택해서 간거니? 좋지... 늙어서도 할 수 있고. 돈 꼬박꼬박 나오고"
그렇게 ─ 나는 자신의 얕은 진심을 확인한 채로, 소위 가장 입결이 높은 과로 불리는 의대에 내 6개 대학 원서 카드를 모두 소모했다.
그렇게 ─ 어쩌다 보니 천장이 뚫려있는, 국내의 이쪽 분야에선 더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는 곳까지 왔다.
강남 살던 내 친척과는, 그 이후로 소원해졌다.
그 집안도 애가 고3이 된지라 입시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했을 뿐더러, 그 해 완전히 입시가 망해 올해 한번 더 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아야 너네 ○○이도 ●●이만큼 대학 잘 가지야 못하겠지만야 뭐 어디 갈수야 있겠냐?"
그리고 한달 전 쯤 할머니가 큰엄마에게 내뱉은 위의 말이 화근이 되어 ─ 그녀는 우리 가족과 우리 조모 댁과의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
자존심을 많이 긁게 된 나름 통쾌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조모는 그걸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이건 그 큰엄마가 가장 괴로워할 일일 것이다.
그리고 선택을 한 후 2년이 넘은 ─ 지금도 나름대로 나는 잘 살아가고 있다.
혹시 그때 선택을 돌이킨다면 다른 길로 돌이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을 한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전혀 후회는 없다.
학교 동문들 ─ 다른 학과를 고학년까지 다니다 이쪽으로 재수할 것을 고민하던 수많은 동문들을 보고,
또한 주변에서 내 위치를 알게 될때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는 모습을 보고,
그리고 아무 걱정 없이 지금 길을 걸어가고, 그 어디보다도 많은 선택의 문이 열려있음을 보고,
또한 이제 누구에게도 고개숙일, 누구도 괜시리 부러워할 일 없게 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는 나의 길을 맞게 찾아왔음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어쩌면 이냥저냥 루틴에 따라 살면서도 ─ 자신의 뜻도 이루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이런 자리를 내가 원하는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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