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는 지금까지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회차였다.
2021.08.21 - [[解] 이해하다/일본어] - 桃太郎[모모타로] 이야기 - 芥川龍之介[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楠山正雄[쿠스야마 마사오] 각색본 검토
저번주에 『모모타로 이야기』의 내용을 정리해둔게 신의 한수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코토(원래 설화에서의 이자나기 미코토가 아닌, 애니 초반부터 나오는 미코토)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가지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내력의 서술이 중심을 이루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미코토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는데, 생각해볼 점이 많았다.
미코토의 삶은 오니와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태어나서부터 줄곧 자신이 오니와 인간의 혼혈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다 하루아침만에 양 부모를 잃고 자신이 가진 오니의 일면을 확인한다.
그(그녀 아님)는 마을에 살면서, 오니란 어떤 존재인지 지속적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마을에는 오니로 인해 부모를, 형제를, 그리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사람의 수효를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오니라면 치를 떠는 그들로부터 당할 고통들을 숙명처럼 생각하고 체념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자나기의 미코토는, 과거 무수한 오니를 축출하고 그들의 본거지인 오니가시마에서 오니 수장에게 다시 인간세상으로 내려오지 않겠다 약속을 받아낸 '오니 킬러'로 불리던 미코토는, 오니인 그를 자신 밑으로 거두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이자나기의 미코토는 결코 '오니라서 죽이는' 자가 아니였다. 미코토는 무엇보다 도의를 우선으로 하는 자였으며, 스스로 찾아와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 아귀(저 소년의 아버지)를 죽이지 못해 망설였다. 아귀는 사람을 해치려 하는 오니가 아니였기 때문이고, 또한 그는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인간의 정을 가졌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그는 강한 힘 앞에, 그리고 자신의 저지른 오니로서의 행동 앞에 '떨고 있던' 자이기 때문이었다.
미코토는 비록 마지못해 아귀의 마무리를 지었지만, 미코토는 결코 인간을 두둔하는 자가 아니였으며, 약자를 해하는 자가 아니였다. 오니의 기운이 있는 아귀의 아들을 거두어들인 것도 그때문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미코토가 해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년은 미코토에게 강한 반발의 감정을 느꼈다. (양친을 잃은 것에 대한 원한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코토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자신에게 두번째 부모와 같은 사람이 되어준 자가 바로 그였기 때문에, 소년은 성장하며 조금씩 그를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소년의 정체성이 이후 확립된 것은 미코토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오니와의 싸움으로 죽은 미코토는, 소년에게 자신이 가진 오니를 멸한다고 하는 '모모타로'의 힘을 넘겼다. 그리고 소년은 완전한 오니가 되었다.
그리고 죽은 이자나기의 미코토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키비츠 미코토는, 자신의 뿔을 꺾어 오니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오니라면 모두 죽이는' 자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이번 9화에서 말해준 키비츠 미코토의 내력이었다.
여기서 또 재미있게 생각할만한 점은, 키비츠 미코토는 이자나기의 미코토가 가진 '모모타로'의 정신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키비츠 미코토의 모모타로는, 비록 지금까지의 작중에서는 오니와 인간의 관계를 여러차례 고민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오니라면 죽이는 자'이다.
단순 예측이다만 키비츠 미코토의 모모타로는, 불완전하지만 도의를 알고 있는 사르토리누의 모모타로와의 합일이 이루어질 때야 비로소 온전한 이나자기의 모모타로로써 완성되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렇게 되면 가장 큰 궁금증은, 어째서 사르토리누는 모모타로의 힘을 받게 되었는가이다. 아마도 조만간 그 내력에 대한 서술이 이어질 것이다.)
이 구조가 정말 맞다면 매우 아름다운 방식으로 세계관과 스토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마지막으로 또 생각해볼 것은, 사르토리누가 황귀와 미코토 중 누구의 손을 잡을지 고민한 끝에 미코토의 손을 잡아버릴 때 어째서 미코토가 경악하였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 또한 단순 예측이다만, 미코토는 자신의 순수한 복수심으로 불타는 힘이 사르토리누의 그것과 합일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착해빠진 선대의 미코토가 그 성격으로 많은 피를 보게되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코토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오니를 증오하며,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짊어지는 존재가 되려 한 것이다. 혹 그렇다면, 이 미코토의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 해소되어 대단원을 내릴지는 조금 더 기다려보아야 할 문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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