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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 즐기다/비문학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를 읽고

by 천매 2021. 6. 30.

 

본래 법에 관심은 없는 편이다. 내가 법을 범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성인이 된만큼 어느정도 법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마침 좋아보이는 책이 서점에 있어 그를 선택한 것이다. 

책은 여러 대중매체, 특히 영화와 만화에서 다루는 가상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이 겪을 수 있는 법률적인 문제들을 지적하며 기초적인 형법, 민법, 헌법의 원리를 알려주며 독자들이 법률의 전체적인 뿌리와 줄기를 잘 이해하도록 한다. 물론 실제 법률적인 내용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것은 상당히 어렵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로스쿨 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법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일들을 잘 해결하기 위한 현명한 방법론들이 집대성된 것이다. 법의 조항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그것에는 각자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억울한 사람을 최대한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고,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나중에 법을 제대로 공부한다면 세상의 일들을 바라보는 매우 통찰력있는 시선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최근에 법 관련 교양서들을 사 모으는데 기여한 첫 발판이 된 책이다. 한번 여러 사례들이 담긴 판례집을 구해 읽어보아도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련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사적자치의 원칙'을 근거로 들어 '비진의 의사표시'를 설명하던 것이 상당히 주목할만했다. 사적자치의 원칙은 스스로의 재산 문제는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이며, 개개인이 판단해서 결정하지 않는 이상 재산상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된 민법 조항 중 하나가 민법 제107조의 진의 아닌 의사표시이다. 농담으로 한 계약은 계약 상대방이 그것을 농담으로 인식했을 때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107조(진의 아닌 의사표시) 
①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아님을 알고 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②전항의 의사표시의 무효는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책과 무관하지만, 이 조항을 보고 갑자기 떠오른 사건이 있었다. 한때 유튜브에서 아무것이나 대신 해준다는 유튜버 '진용진'이 노랑통닭에서 외상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외상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노랑통닭에서 명시한 외상 조건은 조금 까다로웠다. 

"주민등록 등본/초본 각 1통, 보증인 2명, 재산세 납입 증명서 1통, 구청장님 동의서 1통, 건강진단서, 외상 상환 계획서, 초중고 생활기록부, 신체 포기 각서 1통, 서울 안에 있는 노랑통닭에 들러 닭 먹고 필증 받아오기, 런던가서 손흥민 친필사인 받아오기"

그리고 그는 위의 모든 것을 준비해서 노랑통닭의 한 체인점에서 외상 하는 것에 성공했다. 

 

외상을 시도하는 것은 자신의 가진 소유물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하는 하나의 계약이다. 그리고 저 목록이 계약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조건을 만족시킨 이상 계약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저 계약은 비록 노랑통닭 식당 안에 걸린 안내문일지라도 그저 웃음을 위한 것일 뿐, 직원 누구도 그것을 진심으로 가져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겠다. 

만약에 저 조건에 명시한 서류들을 모두 가져올 경우 '전 재산을 넘기겠다'라고 계약했던 경우라면 그것은 확실히 그 농담을 꺼낸 사람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말도 안되는 계약내용이기때문에 충분히 웃어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진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진용진과 노랑통닭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었겠는데, 받기로 계약한 내용이 단지 몇 만원 채 되지 않는 '외상'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비록 노랑통닭 자신은 그것을 농담으로 꺼낸 이야기일지라도, 계약 상대방이 정말로 조건을 충족시킬 의사가 있다면 굳이 비진의 의사표시임을 말할 필요는 없다. 물론 꺼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얻는 손해는 거의 없기 때문이며, 오히려 충분히 재미있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제공해 준 것이다. 무엇보다 해당 조항은 농담으로 계약을 제시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개인들이 원할 경우 이와 같은 자의적인 계약을 맺어도 무관하다. 

이것을 '방식의 자유', 즉 어떤 방식으로 계약하는지는 원칙적으로 자유라는 민법의 큰 원리 중 하나가 여기에도 있다. 

 

법을 살피면 이와 같이 일상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을 더 다각적으로 살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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