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樂] 즐기다/비문학

파시스트 되는 법

by 천매 2021. 9. 11.

 


 

(중략)

매일 아침 만나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적보다는 입증할 수 없는 적을 증오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러면 적을 가장 잘 나타내는 범주는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 적은 언제나 위협적으로 보여야 한다. 똑바로 설 힘조차 없는 사람은 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파시즘에 도움이 되는 적이 대체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위협적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배를 타고 오는 이민자는 위협적인 존재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려면 우리는 그것에 적절한 맥락을 부여해야 한다. 이민자 중 일부는 전쟁과 기근으로부터 도망친 임산부와 어린아이지만, 그 안에는 항상 희망에 찬 힘세고 젊은 남성이 있으므로, 직업과 여성을 놓고 다투는 영역에서 잠재적 경쟁력이 있다. 만약에 그들이 이곳을 장악한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들 고향의 문화와 종교로 인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 자들에게 피해자 이미지를 씌우는 것은 기만적이고 동정심을 자아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이 연약한 존재를 위협으로 만드는 방법으로는 딱 하나가 있다. 우리 자신을 훨씬 더 연약하게 만든 다음, 두 연약한 존재를 맞대놓고 비교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일자리를 찾는다고? 우리는 아예 시도조차 못하는데! 그들이 자기들의 예배당을 갖고 싶어한다고? 우리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들이 온 나라에서 박해와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그들이 전쟁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우리 노년층이 먼저 아닌가? 게다가 젊은 층마저 해외에서 기회를 찾고 있고, 가족 모두가 빈곤의 위기에 처해있는데! 만일 이 게임이 사형집행인 대 희생자 구도가 된다면 우리는 이미 진 것이다. 아무도 굶주린 자 앞에서 문을 쾅 닫는 냉혈한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고 하면, 연약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동등하게 되고, 누구도 다른 사람에 대해 의무감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좀 더 연약한 존재로 만들 필요가 있다. 단결했지만 깨지기 쉽고, 지칠대로 지치고 버림받았으며, 홀로 세계(선진강국, 시장, 외세 등등)에 대항하고, 그간 이룬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았을 수도 있는 각종 문제를 묵묵히 견딘 희생자로 묘사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이 완전히 자리 잡기 전까지는, 외부자가 내부자보다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더 많이 갖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늘 나올 것이다. 이런 유형의 수사학에 대항하려면, 우리는 인정사정 보지 말고 그들의 정당성을 깎아내리는 공격을 해야 한다. 

그 사람 미담 중독자네! 인신매매 옹호자 아냐? 이런 안락의자 행동가라니! 흑인만 애인으로 찾는 여자도 있지! 교황님도 말했다고? 이봐, 교황이야 기꺼이 그들을 바티칸으로 받아들이려 하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교회에 이미 만연한 참상과 부패를 살펴봐야 하는 거 아냐? 바다에서 어린 시신이 떠밀려오거나 중남미 이민 행렬에서 죽은 사람이 나올 때마다 울음을 참지 못하겠다고? 나는 당신이 쥐꼬리만 한 국민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어르신을 보고 우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NGO? 인신매매 공범에 불과하지. 난민 프로그램에 따라 일한답시고 그 가난한 사람들을 등에 업고 이익이나 취하잖아. 

(중략)

 

출전 : 미켈라 무르자, <파시스트 되는 법>, 한재호 국역, 출판사: 사월의 책, 2018. 47-49페이지.


 

이 책의 저자는 진심으로 파시스트 되는 법을 알려주는게 아니다. 누구보다 사회에 파시스트가 생겨나는 것을 경계하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되지 말 것을 반어적으로 역설한다. 

 

저자가 알려주는 대로 파시스트가 세상에 어떻게 생겨나고 또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살피다 보면, 거대 정치권력이 어떻게 시민들의 '나름 자신이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는'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뜻을 이루는지 그 과정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러 발언을 하는 세력들과 이 책에서 묘사하는 파시스트 되는 방법은 겹쳐보이는 면이 많다. 어떤 주장을 살아가면서 경계해야하는지, 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내가 동조하고 있었던 이런저런 사회 갈등들은 적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거대권력의 밑작업은 아닐까. 나는 어쩌면 이런 것에 놀아나 눈이 가려져있지는 알았을까. 파시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실수를 가리기 위해 적을 만들어야 한다. 

'[樂] 즐기다 > 비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시민 - 나의 한국현대사 中 일부 발췌  (0) 2021.10.24
스크랩 1  (0) 2021.09.14
신경언어 기록 1  (0) 2021.08.30
상고어의 재구  (0) 2021.08.30
조만간 읽을 신경언어학  (0) 2021.08.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