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비어 조금 보게 되었다.
주요 등장인물은 15~17세의 어린 학생 넷이다. 이들은 '게임 마스터'로 불리는 존재에게 이끌려 다른 평행세계의 지구로 이끌려오고, 그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하여 여러 퀘스트를 해결해야만 한다.
강제로 외부의 힘에 의해 다른 세계로 불려나오는 상황.
게임마스터가 돌리는 룰렛에 의해 임의로 정해지는 직업.
각자에게 분명히 규정지어진 한계와 퀘스트 실패 시에 맞이하게 될 확실한 죽음의 전제.
이와 같은 부조리한 서사 배경은 감상자가 이 작품에 그려져있는 세계의 '구조'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작품 자체에서도 세계의 구조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는데, 이는 현실 세계에서 등장인물들이 세상의 '구조'에 한계지어져 살아가게 되는 것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이 애니메이션 『나는 100만 명의 목숨 위에 서 있다』는 등장인물이 겪는 동일한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을 다시 발견해내고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던 '벽'을 깨부수는 과정을 개별적인 옴니버스 형식으로서 풀어낸다.
(물론 작품 내적 시간을 고려하면 일련의 사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물들 각각의 입체적인 내적 변화 과정이 한곳에 녹아있는 것이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특히나 감상자가 그 변화 각각을 분리하여 집중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는 것을 느낀다.)
영상에 나타난 서사를 되짚어보면, 평행 세계에서 인물이 겪던 한계와 현실 세계에서 인물이 겪는 한계를 높은 빈도로 교차 제시한다. 현실 세계에 살아가던 인물의 과거는 특히 모종의 트라우마와 같은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곳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 세계에서 각자 자신만의 넘기 어려운 '벽'을 가지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인물들은 벽이 있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거나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 그렇게 적응하게 된 인물들이 평행세계로 이동할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실처럼 다른 길로 도피하거나 애써 잊으며 지내려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죽음과 전진의 양자택일의 선택지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 벽을 뛰어넘어야 하도록, 그렇게 세계가 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각자에게 저마다 가장 힘든 시련을 내려주는 세계는 가혹하게도 보인다 -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발전의 서사가 중심 메시지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서사의 역동을 이끌어주는 것은 각각의 인물들이 좌절했던, 하지만 곧이어 일어나게 되는 일련의 변곡점의 연속이다. 모두 여린 힘을 가질 뿐인 이야기 단위이기는 하지만 그 일련의 좌절과 극복이 하나의 지루하지 않은 주제의식을 형성해내고 있다.
다만 등장인물이 4명이기에 유효한 서사 이끎 방식일 뿐, 더 많은 인물이 앞으로 등장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상당한 단조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여느 라디오의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게 될 뿐이다.
현재 2기가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추후 감상할 일이 있을 때 여기에서는 어떤 요소가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지 중심적으로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여러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이 위에서 이야기했던 세상의 구조에 의해 한계지어진 각각의 인물들, 그리고 저마다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대한 메시지이다.
전달하려고 노력하던 다른 부수적인 메시지가 있다면, 현실 세계와 평형 세계, 그리고 가상 세계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이 될 것인데, 이 부분은 전달하는 방식이 조금 서툴다.
'실제로 가상의 세계가 아닌 어느 실재하는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을 살해하는 것'에 죄악감을 느끼는 인물을 중심적으로 묘사하는데, 논점이 될 소재를 조금 잘못 잡았다는 느낌이 든다.
어린 인물이 자신이 가져오게 된 필연적인 해악에 당황해하는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계물을 움직이는 원리를 잘 살린 작품으로 생각한다.
1. 현실 세계와 다른 이세계에 대한 이해.
2. 현실 세계에서의 나 자신이 가진 한계의 극복.
3. 주인공 혼자의 힘으로만이 아닌, 주위의 사회적 관계를 쌓아, 즉 힘이 되어줄 동료들을 바탕으로 거머쥔 승리.
위의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있다.
(특히 3번째 것은 이세계물의 작품성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최근에 잘 뜨고 있는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에서는 주인공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조력자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주변 장식일 뿐이다. 모든 일은 리무루가 다 해결한다. 그것이 비록 그 세계관이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있고 매력적일지라도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일 것이다. 이런 장르들을 소위 '먼치킨물'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면에서 먼치킨물은 ─ 비록 주인공이 모두 이겨나가는 즐거운 장르일지라도 더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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