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예과 1학년 시절 새벽감성에 젖어서 창밖 바라보고 자기반성하던 글이 많이 있는데
다시 읽어볼만한 글들이 정말 많아서 이곳에도 저장하여 이따금 읽어보려고 한다.
글감이 될만한 글들이 많기도 했다.
바쁜 하루였다. 7시에 집에 돌아와서는... 바로 8시에 친구놈 만나러 갔다.
근데 이 친구 이야기 하는게 상당히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얘는 중학교때 친구였다. 사실 정말 '아무 말'을 주고받던 놈이다.
그때는 괜히 졸졸 따라다녀서 사람 피곤하게 하는 것 같아 별로 안좋아했는데,
지금은 시기도 애매하고... 이야기할 친구가 거의 없어서 얘라도 감지덕지.
카페에서 만났고, 시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눴다.
현 정부가 코로나에 대해 대처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뜨는 유튜브 채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중학교때 있었던 일들,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그 예전의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다.
"1학년 때 체험학습 두군데나 갔었지!"
"그 몇학년 때 우리 반 반티 기억 하냐? 그 오렌지 색깔.."
"그때 이런이런 선생님들이 있었지!"
분명히 낯이 익는 말들이다.
하지만, 나는 옛날을 떠올리자면 기억에 남는 좋은 일은 거의 없던 것 같다.
중학교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없다.
...아니, 떠오르는 것이 없다기 보다는 이렇게 말하는게 정확하겠다.
- 옛날 일들을 머리 속으로부터 떠올리려고 하면,
다른 거대한 무언가가 그 회상을 막고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내가 과거를 떠올리지 못하게 하는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 내가 가진 부정적인 기억들이 아닐까. 그리 확신한다.
하지만, 이 쓰라린 기억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생각해보려고 한 적은 없다.
이 기억들을 되뇌이는 것만으로도 매우 아픈 경험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 추억들을 막고 있는 강렬한 부정적인 기억들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다.
사실 중학생때 기억, 고등학생때 기억...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물론 즐거웠던 일들도 많았겠지만, 나는 대개 주위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을 잘 기억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두 경우 모두 졸업할 시기에 안좋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3 겨울쯤에는 누군가 나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퍼트려 상당히 힘든 적도 있었다.
거기에다가 등급을 조정해서 원하는 고교에 입학하려고 마지막 기말고사에...
담임 과목에서 2점을 맞고서는 완전히 그와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주변 시선들이 두려웠다. 아마 그 때 상당한 피해망상을 얻은 것 같기도 하다.
졸업을 앞두고 한달 남짓, 삭막해진 주변 관계는 버리고 오로지 고등학교 선행학습에 힘썼다.
고등학교에 가면 공부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올라왔고, 학교에서는 상당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기숙사에서 보내는 학교에 다니다 보니, 주변 친구들과의 갈등도 상당히 많았고,
성적이든, 수상이든, 내가 무언가 잘 이뤄내기만 하면 비아냥거리고 깎아내리려고 하는 이들도 많았다.
확실히, 중학교에서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과의 관계는 학교에서만 잠시 참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그곳은 이야기가 전혀 달랐다.
그 속에서 악착같이 버텨내어야 했다.
남을 생각하고 해하지 않으려는 그런 나의 옛 본성은,
그곳에서 더이상 버티고, 기능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삭막한 경쟁 속에서 아무도 내 편이 없다고 느꼈을 때,
모두가 적이고 나 혼자뿐이 내 편이라고 느끼게 되었을 때,
나는 마음의 문을 닫기로 결심했다.
주변에서 던진 비아냥에 아무 말 없이 당하는 호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나도 악마가 되어 그들을 눌러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보는 내 책상에 친구들에게 공격적인 글귀를 적어넣었다.
그곳에 있는 모두와 거의 절교할 생각으로 그런 행동에 임했던 것 같다.
그만큼, 성적 외에는 모든 것을 잃었던 나는, 더이상 인간관계를 통해 잃을 것이 없었다.
그놈들은 나에게 단 1그램의 도움도 되지 않는,
단지 마주치기만 하면 기분 나쁜 말만 던지는 존재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가장 심했던 고2 2학기때부터 고3 1학기 때까지,
수십명의 아이들과 같은 곳에서 생활했지만, 누구와도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에도, 나는 과학 개념서를 읽고, 영어 단어를 외웠다.
설령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그걸 보고있는 척 하려고 노력했다.
정말로 공부 외에는 내 주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갔다.
끔찍하다면 매우 끔찍한 일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그것도 서로 즐거워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그들과는 소외감을 느끼고, 그 속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망도 떨쳐야 했던 그런 상황들.
내 주변의 모든것들을 의식적으로 외면해야만 하는, 스스로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은 삶.
고등학교 생활은 그러한 고문의 반복이었다.
사실 이 중고등학교 시기에 서브컬쳐 계열에 뛰어든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었던 것 같다.
현실을 가장 잘 외면하면서, 마음의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그런 것이었다.
각박한 현실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순간의 향락, 그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되도록 아픈 과거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내 정신 회로에 어느 정도의 방어기제가 생겼던 것 같다.
옛 일들을 모두 잊을 수 있게, 혹은 더이상 떠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나도, 제 딴에 나름대로 생명체라고, 나름대로 주변 환경에 적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트라우마가 될 일을 굉장히 많이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잘 살아갈 수 있던 것을 보면,
퍽이나 매우 효과적인 생존전략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과거의 일들을 잊고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 옛 이야기를 나누며, 잃었던 추억의 조각을 조금씩 되찾는다.
분명 옛 기억 조각들을 하나하나 되새겨보면, 그 중에는 분명 내게 뼈저린 아픔을 상기시키는 조각들도 있다.
하지만, 기억의 심연에 가라앉아 꺼내 볼 수는 없지만,
그 수면에서 무언가 느껴지는 그리운 느낌.
비록 순간순간일지라도 느꼈던 성취감, 행복감, 그리고 설렘.
잠깐이었을지라도 웃을 수 있었던 일들.
볼 수는 없지만 눈을 감으면 느껴져 온다.
조금은 마음의 빈 구석이 차오르고 따뜻해진다.
좋아. 이 느낌만 가지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약간은 어설프지만 풋풋한 느낌.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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