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chosun.com/opinion/taepyeongro/2021/06/28/VHSC2J3RX5BVHDDZLHTXXKGCEM/
약자성과 피해자성을 넘보는 것이 사회에 만연한 내로남불의 근원이라는 것은 매우 통찰력있는 주장이다.
그 약하다는 속성이 우리 사회에서 높게 쳐주는 개인 속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자가 아닌 사회적 강자, 혹은 권력을 잡은 정치 지도자가 이런 주장을 펼치면 반대로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현 정권에서 비슷한 ‘내로남불’이 반복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무의식이건 그렇지 않건, ‘약자성’과 ‘피해자성’을 탐내기 때문이라고. 무려 172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확보한 집권당인데도 여전히 주류와 기득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 ‘독재 타도’를 외치던 80년대 학생 운동 시절 이래로 우리는 약자이며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오만, 따라서 약자이자 피해자인 우리는 원하는 대로 행동해도 될 권리를 가진다는 환상 말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젊은 세대의 웃지 못할 SNS 놀이 중에 ‘가난 인증’이란 게 있다. ‘약자 배틀’처럼, 누가 더 가난한지를 겨룬다.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강북 아파트에서 거주하니 가난하다고 주장하고,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우스 푸어라 불행하다고 슬퍼한다. 이런 소용돌이에서 정작 말문이 막히는 이들은 진짜 가난한 사람들, 정말로 힘든 사람들이다. 박완서의 소설 제목 ‘도둑맞은 가난’처럼, 마지막 방패마저 빼앗긴 셈이다.
비록 기사문은 정치적인 규탄을 위해 쓰였을지라도, 실제로 우리 삶에도 약자 코스프레 하는 사람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 : 서울에 15억짜리 집도 좀 있고 하지만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적어서 우린 체감상 가난해요...
??? : 우린 물론 추축국이었긴 하지만 원폭에 의한 피해자 국가야...
여러모로 정말 편리한 방패이다.
자신의 무능력과 장애물을 무엇이든 '자신은 약자' 프레임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축에 있는 것이 있다면 : 바로 '노오력'일 것이다.
https://namu.wiki/w/%EC%9D%98%EC%A7%80%EB%93%9C%EB%A6%BD
다만, 의지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긍정적으로 의지를 복돋는 건 나쁜게 아니다. 오해하지 말 것.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범위에서 의지를 강요하는 것이 의지드립이다. 또한, 의지드립은 정말로 게으르거나 무능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무시할 때 사용된다는 단점도 있다.
의지를 강요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는 문서이고, 어찌보면 패배주의적인 면이 처절히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자력으로 극복 불가능한 상황들은 세상에 존재한다.
하지만 '극복 불가능'과 '극복 가능'의 애매한 경계선상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방패를 즐겨 애용하는 것은 그리 보기 좋지 않다.
우리 학교 에브리타임에도 시험기간만 되면 ADHD를 스스로 의심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이른바 '패션 ADHD'이다.
자신의 실패와 나태를 저렇게 잘 설명해주는 이론이 없다. 실패를 분석하는 처절한 훈련에 임하기도 전에 '나는 이런저런 병이 있어서 안돼' 라는 방어적인 기작부터 늘어놓는다. 악순환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장애가 자신의 무능력함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런 경우 그 방패 뒤에 선 사람은 영원히 자신의 '상상 속 방패'에 갇혀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최후의 방패가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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